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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1-05-12 (목)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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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시문집(詩文集)을 남긴 준성(駿聲)공

 

 
많은 시문(詩文)을 남긴 준성(駿聲)공 묘
소재지 : 경북 안동시 풍산읍 수곡동


공(公)의 휘(諱)는 준성(駿聲)이요, 자(字)는 치명(穉明), 호(號)는 송고(松高)이시니, 충의공(忠毅公) 휘(諱) 문기(文起)의 十三세손 이신 휘(諱) 광탁(光鐸)공의 아드님으로, 一八一一년 七월 七일 자택(自宅)에서 출생(出生)하셨다. 성질(性質)이 오안(傲岸)하고, 체격(體格)이 건장(建壯)하였으며, 풍채(風采)가 남달리 뛰어나게 생겼으므로 보는 사람들이 이상(異常)하게 여겼고, 조고(祖考)께서도 장차 큰 그릇이 될 것이라고 기뻐하셨다. 어른이 되어서는 소문(所聞)난 스승을 좇아 유학(遊學)하시면서 내외경중(內外輕重)을 분별(分別)하고 길흉소장(吉凶消長)의 이치(理致)를 아셨다. 일찍이 학자(學者)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선비가 이 세상(世上)에 태어나 출세(出世)하면 착한 사람을 등용(登用)하고 어진 이를 천거(薦擧)하여 보세장민(輔世長民)하는 것이 장부(丈夫)의 마땅히 할 일이라.」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왕도(王道)를 귀히 여기고 패도(覇道) 천(賤)히 여겨 요순(堯舜)의 백성(百姓)이 되는 왕도(王道)를 이룬다면 이는 사람이 허생(虛生)하지 않은 큰 사업(事業)이나 그렇지 못하다면 물러나 농사(農事)를 지은 것인 성명(性命)을 보전(保全)하는데 좋을 것이다.」하시고 독서(讀書)를 좋아하시며 손에 책(冊)을 놓지 않으셨다. 저술(著述)하신 시문 십수권(詩文 十數卷)이 세상(世上)에 전하고 있다.

약관(若冠)에 성균관 생원시(成均館 生員試)에 합격(合格)하셨으나 시무(時務)에 따르지 않으시고 후생(後生)을 계도(啓導)하는 것으로 임무(任務)를 삼으셨다.

또 효성(孝誠)이 지극(至極)하여 양친(兩親)을 섬기면서 뜻을 어기는 일이 없이 승순(承順)하셨다. 집안이 본래(本來) 가난하여 숙수(菽水)를 잇기 어려웠으나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해드리면서 맛있는 음식(飮食)를 얻으면 반드시 품고 가서 드리셨다. 몸이 편치 않는 기색(氣色)이 있으면 잠시(暫時)도 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시탕(侍湯)하시면서 대소변(大小便)을 몸소 받아내시고 타인(他人)에게 맡기지 않으셨다. 상(喪)을 당해서는 상장범절(喪葬凡節)에 있어 한결 같이 가례(家禮)에 따라 유감(遺憾)없이 하셨으니, 이는 다 죽은 사람 섬기기를 산 사람 섬기듯 한 것이다.

갑신년(甲申年)과 계사년(癸巳年) 사이에 김성언(金成彦) 진황부자(振璜父子)가 백촌(白村)공의 적손(嫡孫)이라고 사칭(詐稱)하여 종통(宗統)을 빼앗을 간계(奸計)로 임금을 모독(冒瀆)하고 대종중(大宗中)을 기망(欺罔)하여 법정(法廷)에 소송(訴訟)을 제기(提起)한 바, 쟁송(爭訟)이 자못 이십여성상(二十餘星霜)에 이르렀다. 공은 주손(冑孫)인 주성(周聲) 종노(宗老)인 치수(致秀) 두 어른과 더불어 분기합력(奮起合力)하셨고, 또 저들의 부당(不當)한 사례(事例)를 열거(列擧)한 문사(文辭)가 정연(整然)함에, 법사(法司)에서 지감(知鑑)하고 옥석(玉石)을 명확(明確)히 분별(分別)하였으니, 이 어찌 사필귀정(事必歸正)한 천리(天理)가 아니겠는가. 저들의 무리가 호판(戶判)공과 영상(領相)공의 비석(碑石)을 파괴(破壞)하고 묘우(廟宇)를 훼철(毁撤)한데서 그친 것이 아니라 또 유허비(遺墟碑)를 파쇄(破碎)함에 공(公)이 진력복원(盡力復元)하셨으니, 공(公)의 한평생 경주(傾注)한 심력(心力)을 대개(大槪) 상상(想像)할만 하다.

공(公)께서 별세(別世)하신지 백십유여년(百十有餘年)이 되었는데 성언(成彦)의 잔예(殘裔)들이 다시 법정(法廷)에 소송(訴訟)을 제기(提起)하여 대법원(大法院)에 까지 이르렀으나 일이 또 바른 데로 되었으니, 이는 진실(眞實)로 공(公)이 남기신 문헌(文獻)의 고증(考證)에 힘입은 것이다. 一八七六년 八월 十八일 향년(享年) 六十六세로 자택별세(自宅別世)하시니, 안동군 풍산읍 수곡일동(安東郡 豊山邑 壽谷一洞) 자좌(子坐)에 안장(安葬)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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