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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5-11 (수)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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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언론인 형두(炯斗)공


 

 
항일 언론인 형두(炯斗)공



공(公)의 휘(諱) 형두(炯斗) 자(字)는 태관(泰寬) 호(號)는 일경(一耕)이다. 충의공(忠毅公) 휘(諱) 문기(文起)의 十六세손 석권(碩權)공과 오현여사(吳賢女史, 海州)의 큰 아드님으로 一九一○년 二월 二十五일 경남 고성군 고성읍 사동(固城郡 固城邑 社洞)마을에서 출생하셨다. 공(公)의 아버님이신 휘(諱) 석권(碩權)공은 공(公)의 훈육을 위해 사낭(舍廊)에 서당을 개설하고 공(公)을 교육하셨다.

공(公)이 十四세 되던 해에 집을 나가 신교육학교인 향리(鄕里)의 철성의숙(鐵城義塾)에 편입하였다. 철성의숙(鐵城義塾)은 항일정신의 본산으로 이 시절 항일 민족정신을 강하게 영향받았다. 一九二五년 공립보통학교에 편입학하여 신교육을 받던 중 어느 날 방정환(方正煥)의 어린이 잡지를 보고 문학소년을 꿈꾸게 되고 여러 신문, 잡지에 투고 동아일보를 비롯 여러 곳에 동시 등 작품이 실리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 一九二六년 진주의 진주농고에 진학하여 교우회지의 창간을 주도하고 일제하에 진주학생들의 비밀결사인 『동무사』에 가맹하여 학생운동을 주도한 그는 一九二六년 六월 十일 일어난 六·十 항일만세사건 一년 후인 一九二七년 六월 三十일을 기해 진주고보, 진주농고, 일신여고 등의 연합항일동맹휴학을 주도한다.

공(公)은 일제의 검거를 피해 일본으로 몸을 피해 일본대학 전문부에 입학하여 전문교육을 받는다. 집안 사정으로 학교를 중퇴하고 고향에 돌아온 후에도 일제의 요시찰 인물로 감시를 받는다. 공(公)의 언론인으로서의 첫 직장은 동아일보 고성지국기자를 시작으로 一九三○년부터 지방 기자 생활을 한 공(公)은 민족운동에 연루되어 일제의 모진 고문을 받고 七개월간의 옥고를 치른다. 一九三五년부터 十년간 매일신보, 부산일보 등의 기자로 일하면서 일제정책 비난기사 등으로 수난을 당하는 등 언론인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해방이 되자 부산일보 한국인사원들과 함께 전국 최초로 한글로 발행된 민주중보(民主衆報)를 발간하면서 편집국장이 된다. 좌우익 대립이 극심하던 해방직후 공(公)은 중도를 표방하면서 신문을 제작하였고 一七四七년 국제신보를 창간하여 발간부수 十만부라는 전국 五대 일간지로 발전시켰으며 一九五三년에 서울에 세계통신사를 세워 명실 공히 신문, 통신을 통해 반독재, 민주화 논조를 표방한 논설과 보도를 했다. 四·一九 민주혁명에는 전국에서 최초로 학생들 편에 서서 과감한 보도를 하였고 부산 용두산 공원에 四·一九 기념탑을 건립하여 지금도 그곳에 四·一九 기념탑이 우뚝서있다. 민주화가 되자 언론만으로는 도저히 조국을 발전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 공(公)은 참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어 의정활동을 했다. 그러나 의정활동 중 기성 정치권에 실망한 공(公)은 다시는 정계에 발을 담지 않았다.

공(公)은 체육 발전에도 힘을 써 전국고교야구대회, 재일교포학생야구단 초청 등 야구 발전에 힘썼으며 대한야구협회 부회장, 부산, 경남야구협회장, 대한체육회부회장 부산, 경남체육회장 등을 역임하는 등 활약을 하였으며 교육에도 힘써 경남중고등학교, 부산여중고교의 육성회장을 역임하면서 학교발전에 이바지 한 바 컸다. 또한 김녕김씨부산종친회를 설립하고 중앙종친회고문을 역임하는 등 종사에도 힘써 왔다. 공(公)은 一九七七년 八월 二十六일(음 七월 十二일)별세하였다. 그가 남긴 국제신문은 부산에서 발간되고 있으며 공(公)이 길러 온 인재들은 전국에서 언론인으로서 활약을 하고 있으며 『내가 본 세계』, 『국제 명론절집』, 『신문과 나의 반생』 등 저서를 남겼으며 재단법인 일경언론문화재단을 설립하여 현재도 언론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묘소는 경기도(京畿道) 남양주군(南陽州郡) 마석 모란공원묘지에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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