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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5-13 (금)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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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를 개발한 남관(南寬)공

 

 
지역발전에 공이 큰 남관(南寬)공 공적비
소재지 : 전북 무주군 무주읍 구천동


장암 김남관선생 공적비문(長巖 金南寬先生 功績碑文)

여기 무주에서 태어나시어 무주를 위하여 평생 몸과 마음을 바치신 선생의 거룩한 뜻을 기리며 그 공적을 후대에 빛내고자 이 비에 새긴다.

선생은 一九二一년 一월 二十九일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에서 부친 김장원(金壯元)씨와 모친 임성녀(林姓女)씨의 장남으로 출생하니 본관은 김녕(金寧)이시다. 선생은 무주초등학교를 나와 일본에 유학하여 이공계 학업을 마치고 그 분야 기술직에 종사하다가 경찰 간부가 되어 내무부 치안국 통신과장을 역임 후, 육군사관학교에 입교, 군사 학문을 익히고 졸업하여 한국전쟁에 참전, 영예의 화랑무공훈장을 받으셨다. 군 복무를 계속하여 육군대령으로 승진 육군 제五○二통신단장, 육군통신학교 교장 등 육군의 통신 분야 주요직을 두루 거치고 一九六七년 예편하여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산자수명(山紫水明)의 고장 무주에 다시 돌아오셨다.

일찍이 선생은 군 복무 시절인 一九五八년 가을, 추석 성묘 차 귀성하여 은사이신 당시 무주초등학교 김환형(金煥馨)교장을 예방하였다. 그 자리에서 구천동에 가거든 빼어난 절승지가 많으니 탐승할 것을 권유하는 은사의 당부를 깊이 새기고 구천동에 가서 조상의 성묘를 마치자 구천동 계곡을 비롯하여 주변 산기슭을 샅샅이 탐승, 그 수려함에 심취하여 구천동 일대를 관광지로 개발하기로 뜻을 세우셨다.

그 후에도 선생은 구천동 답사를 거듭할수록 구천동이 관광자원으로서 최적지라는 확신을 갖게 되어 이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 관광지로의 개발에 온 정성을 쏟기에 이르렀다. 선생은 一九六○년 초 육군본부 통신과장 재직 시 무주 구천동을 관광지로 개발하려면 우선 군부대의 힘을 빌려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그 방안을 연구한 끝에 덕유산에 무선중계소 설치를 착안, 이 계획을 상부에 건의하여 마침내 승인을 받아 덕유산 통신소의 개소를 보게 되었다. 이로부터 구천동은 군부대 주둔으로 문화·경제·교통 등이 발전되기 시작하였다. 도로의 신설과 확장으로 一九六一년 봄부터는 차량이 자유롭게 구천동을 통행함으로써 그동안 감추어졌던 구천동의 신비스러운 절경이 세상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따라서 선생은 관광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하여 김환형(金煥馨), 현종호(玄鍾虎)와 함께 구천동 입구인 나제통문(羅濟通門)에서 덕유산까지 장장 七十리 계곡을 도보로 답사하여 三十三경(景)의 절경지와 고적지를 선정, 명명하기에 이르렀다. 그 명칭은 예부터 전해져 온 원명(原名)은 그대로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지만 명칭이 없는 몇 곳만은 새로 이름 지었다.

한편 구천동의 숨겨졌던 절경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길이 관광 개발의 필수 요소임을 깨달은 선생은 다시 유지들의 협력을 얻어 약 三년간에 걸쳐 전국의 주요 도서관과 교통부를 비롯한 정부 유관기관에 배포하여 무주 구천동이 관광지로 최적지임을 설득하며, 국가의 관광지로 지정해 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청하였다. 그 결과 一九六二년 四월 十二일, 우리나라 최초로 「한국(韓國)의 十대 관광지(觀光地)」의 하나로 무주 구천동이 선정되었다.

이 사실이 신문지상에 대대적으로 보도됨으로써 구천동은 일약 전국적인 관광지로 등장하게 되었다. 또한 선생은 六·二五동란에 소실되었던 백연사(白蓮寺)를 복구하는 한편 한풍루(寒風樓)도 이전 복원하였다. 이로서 무주군내 각 기관과 유지 등이 적극 호응하여 一九六三년 초에 무주 관광협회를 창립하여 본격적으로 구천동 관광지 개발에 착수하기에 이르렀다.

이리하여 구천동은 한국의 유명 관광지임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인의 관심까지 갖게 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한국 최초의 명승 관광지 무주 구천동은 이러한 배경 하에 탄생되었으며 국립공원으로서 빛나는 앞날을 기약하게 된 것은 오로지 선생의 높으신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었음을 엄숙히 여기에 밝힌다.

비록 선생께서 一九七六년 十一월 二十二일 유명을 달리하셨지만 무주 구천동 계곡 굽이굽이마다 칠봉산 봉이봉이마다에는 선생의 고귀한 고향 사랑의 뜨거운 열기가 살아 있는 덕유산의 수호신으로 영원히 빛날 것을 우리 모두 무주인(茂朱人)은 믿어 의심치 않으리라. 무주에서 태어나 무주를 위하여 살다가 하늘로 떠나신 선생이시어. 무주 구천동의 밤 하늘에 별이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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