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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4일자 사육신수호회에 대한 반박 성명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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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종회 이름으로 검색 댓글 3건 조회 4,137회 작성일 09-03-18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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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도계주인님의 댓글

도계주인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또 안타까운 광고가 실렸네요. 지난 주 토요일 조선일보 광고인데 참으로 답답합니다.
얼마 전에 우연한 기회에  사육신 수호회의 성원규라는 자의 글을 본 적이 있는데 하도 기가 차서 할 말응 잊었는데 조선일보 반박 성명서를 보니 성원규의 글의 반박 같네요.
충의공파 예손 여러분!
새로운 전거가 나타나면 바뀌는게 역사입니다.  왕조실록이 1950년대 후반에 영인되어  일반에게 알려져 백촌 선조의 사실이 천하에  알려져 1977년 백촌 선조님이 사육신으로 현창되었습니다.
그 간의 사정이야 누구보다도 일가들이 많이 아시겠지만, 이제 이런 새로운 사실을 부인하고 백촌의 현창은 고사하고 노량진에서 가묘를 파서 이장하라는 주장을 하는 무리가 있습니다. 이에 세월이 흐르고 전일의 사실에 어두운 서울시가  이런 주장에 얼핏 동조하는 어쩡쩡한 태도를  취한 적도 있어 문제가 되고, 현재의 국사편찬위원회를 구성하는 위원들의 불분명한 태도 표명으로 말미암아 이 지경에 까지 이른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말로 충의공파 제첨종께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진정 백촌의 후손이라면 뭘 해야겠습니까?
나는 진권 대종회 회장님에 대한 친소가 별로 없지만 그 어른이 작년에 백촌기제에 가면서 한 말씀이  크게 기억이 남습니다. " 확, 몇 놈 죽이고 나도 죽어버리고 싶다'  백촌 현창에 시비 거는 무리를 두고  한 말씀입니다.  80 가까운 노인이 그런 말씀을 하실 때는 얼마나 속상함이 크실까 하는 것은 묻지 않아도 미루어 짐작이 되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백촌 때문에 죽을 마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문중사를  보면 백촌 현창에 죽은 분도 있습니다. 이휘 종군이 대표적 예 겠지요. 목숨을 바쳐 기면서 선조의 신원을 도모하고, 결국 영조 때 신원하고 정조 때 시호까지 받고 1977년 사육신현창까지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원복관작 사시 까지는 별로 시비를 거는 무리가 없었고 오히려 지 할아버지 라고 주장하는 놈들 까지 생겨 조선 후기 내내 종통시비로 이어져 우리 문중들과 종가의 골치거리로 쟁송까지 하는

도계주인님의 댓글

도계주인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

희한한 꼴도 있은 줄 압니다.  그래도 그 것은 황당한 해프닝이지만 지금의 成元奎 아류와 川寧 兪門의 유신섭 등의 작태는 대단히 악의적이고 조직적인 도발로 여겨집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이론적 지주인 이재호 전 부산대 교수는 백촌 선조 땜에 일약 스타덤애 오른 인물입니다. 한낱 지방대 교수가 백촌 사육신 현창을 부정하면서 세상에 화제가 되었고, 급기야 자기 이론의 정당성을 위해 왕조실록의 原文까지 바꿔 가면서 백촌을 폄하하더니, 성원규의 증언에 따르면 김재규 중정부장이 지를 죽이려고 했다는 말까지 하면서 부산에  살아서 안 죽었다는 말도 합니다. 김재규 부장이 , 아니 그 당시 중정이 시국의 내일을 점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지방대 교수 하나를 죽이려고 했을까 하는 의문도 있고, 부산에 있어서 죽음을 면했다는 말도 말이 안되는게 정말 죽이려고 했으면 부산 아니라 어디에 있은들 안죽였겠는가 싶습니다. 설은 분분하지만  김형욱은 미국 갔어도 죽었는데 .....
나는 그 당시 대학을 다녔는데 중앙정보부가 당시 그렇게 한가한 조직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도 의심치 않습니다.
여하튼 이런 터무니 없는 주장을 하면서 백촌 선조를 폄하하는 작태를 보면서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무력감을 느낍니다.
대종회 차원애서 해명 광고내고, 재판하고, 시위하면서 별의 별 일을 하면서 그 들의 도발에 대응 하지만 과연 나는 무엇을 했는가? 
한마디로 부끄럽습니다. 제가 지난 6년을 서울 종친회 사무국장을 있으면서 내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지 할아버지를 저렇게 욕하는 무리가 있음에도 무엇을 했는가?  아니 할 말로 퇴계나 율곡 후손들이 史實을 부정하면서 자기 할아버지를 폄하하는 무리가 있다면 이렿게 무덤덤하게 받아들일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내가 컴퓨터 활용이 능치 못해 댓 글 조차 잘 달 수 없지만, 조선일보에 난 슬프고 안타까운 익숙한 광고를 보면서  몇 자 올립니다. 이게 하루 이틀에 끝날 문제도 아닌 것 같고, 저는 별 능력이 없지만 제가 하고 싶은 말 중의 하나는 힘을 가졌으면 힘, 돈을 가졌으면 돈 , 재주를 가졌으면 재주, 하다못해 인물을 가졌으면 인물로 라도 백촌 선조의 현창에  일치된 한 마음으로 매진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경북상주님의 댓글

no_profile 경북상주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제가 감히 한말씀 올리고자합니다. 저는 종친회에 관심도 많고 문중사에대하여도 관심이 많았으나 하던 사업의 실패로 고난의 세월을 보내다보니 이제서야 여기를 찾아 왔습니다
저는 시조할아버님의 24세손입니다
지난 병자옥사에서 주축이셨던 18인의 선현들이 생체거열형(백촌할아버님포함 16인) 고문에의한 옥사 (박팽년 ) 자택에서 자결(유성원)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로볼때 사육신이라고 정해진 사실을 인정할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당시대를 살지도않응 남효온이라고하는 놈팽이가 쓴 추강집이라고하는 야사집에 근거를 두고 후세에서 정한것입니다. 더웃기는 사실은 단종2년에나서 성종시대를 살았던 남효온이 생육신에 올랐다는겁니다
정사인 왕조실록은 보지도 않고 야사를 보고 정한 사육신이 지금까지 정사로 사실인냥 받들어지는게 웃기는일이지요
저의생각은 그당시에 사지가 찢기고 가족이 몰살되고 가산을 몰수당한 18인 모두가 만고의 충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똑같은죄와 똑같은 형벌을 당한 사람들을 여섯명만 가리켜 사육신이라고하는 그자체가 모순입니다
그리고 사료에 나오듯이 당시 가장 지위가높고 중추적인 지도자역할을 하셨던 우리 백촌 할아버님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저위선자들을 이해 할수가 없어요
지금부터라도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고 잘못된 사실을 인정하는 자세를 가지기를 바래봅니다
그리고 누가 뭐라해도 역사의 진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랑스렁 조상을 가진 후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