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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곡재(聲谷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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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댓글 0건 조회 3,950회 작성일 11-05-1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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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곡재(聲谷齋) - 창녕 구미문중 계택(啓澤)공 재실
소재지 : 경남 창녕군 대지면 구미리



백촌 선조의 十四세손 계택(啓澤)공 이하 선조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一九三六년 건립되었다. 전 후손들이 모금에 참여했고 특히 치욱, 치해, 치한, 치억 등 후손들이 주동이 되었다.


성곡재기(聲谷齋記)

화왕산(火旺山)은 창녕(昌寧)의 진산(鎭山)이다. 한 지맥(支脈)이 서(西)쪽으로 떨어지면서 五,六리를 비틀거리고 내려오다가 머리를 돌려 넓고 넓은 들판에 늘어서서 은연(隱然)히 한 골짝을 이루었다. 성곡(聲谷)으로 재호(齋號)를 한 것은 나의 증조(曾祖)이신 휘(諱) 계택(啓澤)공 이하(以下) 구농(邱聾 : 산소)이 있는 곳이다. 이에 여러 자손(子孫)들이 함께 도모(圖謀)하기를 춘추(春秋)로 우상(雨霜)이 내릴 때 영문(瑩門)에 향사(享祀)를 드리지 않을 수 없고 또 재숙(齋宿)할 곳이 없어서는 안 되겠다 하여 일가(一家)들이 진력(盡力)해서 자금(資金)을 모아 몇 년 뒤 다행히 지난 정축년(丁丑年) 봄에 당우(堂宇)가 이룩되자 또 표방(標榜)이 없어서는 안 되겠다 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제의문(祭義文)을 외우면서 이르기를 「제사(祭祀)날 방에 들어가면 어렴풋이 신령(神靈)이 돌아다닌 것을 불 수 있을 것이요, 문(門)밖에 나서면 숙연(肅然)히 신령(神靈)의 용모(容貌)와 음성(音聲)을 들을 수 있을 것이며 밖에 나와서 들으면 개연(慨然)히 탄식(嘆息)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제 성곡이자(聲谷二字)를 써서 우리 재사(齋舍)에 건다면 지명(地名)을 쓰지 않아도 선조(先祖)를 제사(祭祀)하는 일이 부합(符合)되겠느냐고 일가들에게 붇자 모두 좋다고 하였다. 나 또한 옷깃을 여미고 말하기를 지금 사람들이 하는 일을 보면 모두가 허문위식(虛文僞飾)이다. 우리 역시(亦是) 평범(平凡)한 사람에 지나지 않으나 가면(假面)이 아녀자(兒女子)의 흉내를 내는 것과 같이 나에게 있는 순진고유(純眞固有)한 진실(眞實)이 이르지 못한다면 혹 비방(誹謗)을 받음이 없다 해도 당초(當初) 부정(不整)한 사람보다 나은 사람이 되겠는가?

대체로 천하(天下)에 모든 일이 성자(誠字) 중에서 작출(作出)하지 아니한 것이 없다. 신인(神人)이 교제(交際)할 때 사벽(邪僻)한 마음이 신인(神人) 사이에 있고 오탁(汚濁)한 정신(精神)이 섞인다면 어찌 여재(如在)의 격지(格至)를 바라겠는가?

이러므로 군자(君子)는 제사(祭祀) 지낼 때 반드시 안에서 재계(齋戒)하고 밖에서 산재(散齋)하였다. 다만 용체(容體)를 보고 성음(聲音)을 들은 것 같이 할 뿐만 아니라 참으로 보고 듣는 것 같이 정성(精誠)을 다한 연후(然後)에 제사(祭祀)를 지내는 것 같을 것이다. 이에서 추원(追遠)의 도리(道理)를 다한 것이다. 또 한마디 할 말이 있다. 무릇 우리 뒤에 난 소자(小子)들은 조상(祖上)에 욕(辱)됨이 없음을 생각하고 장래(將來)에 독서(讀書)를 폐지(廢止)하지 말 것이며 시예(詩禮)의 업(業)을 떨어뜨리지 말고 행하며 효우(孝友)의 풍성(風聲)이 세상(世上)에 떨친다면 우리 김씨(金氏)의 성유(聲猷)가 어찌 특별히 오늘뿐이겠는가? 이것을 기문(記文)으로 한다.
무인년(戊寅年) 봄
불초 증손 두경(不肖 曾孫 斗璟)은 삼가 씀


聲谷齋記

火旺昌寧鎭山而其一枝西落逶迤下五六里回頭列立於大野莽蒼之間隱然成一谷名曰聲谷者是我曾祖考府君諱啓澤公以下邱壟所在之地也於是乎諸子孫相與謀曰春秋雨霜之節不可不薦塋門之享而亦不可無齋宿之所竭力鳩財者幾許年而何幸往年丁丑春堂宇是成焉堂成而亦不可無標榜也故余誦祭儀之文曰祭之日入室僾然必有見乎其位周旋出戶肅然必有聞乎其容聲出戶而聽愾然必有聞乎其嘆息之聲今以聲谷之字揭之吾齋則無乃用地之名而符合於祭先之事乎咸曰諾余又整衿更進曰今見盈天地則都是個虛文僞飾而吾輩亦不能脫科臼假面如兒子之效嚬不致在我純眞固有之誠則無或取譏於傍人而反不如當初不齊之爲愈乎大抵天下萬事何莫非誠字中做出來又况以人交神之際邪僻如或間之汚濁如或雜之其何望洋洋如在之格思乎是故君子之祭也必致齋於內散齊於外非但如見容體如聞其聲音有似乎眞見眞聞然後乃可免如不祭之歎而追遠之道於是乎盡矣抑有一說凡我後生小子思無忝於所生期勿替於將來讀書焉使詩體之緖不墜行己焉使孝友之風益振則吾金氏之聲猷豈特如今日而巳也哉遂書此以爲記
戊寅春
不肖 曾孫 斗璟 謹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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