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행편 큰 덕(德)을 베푼 호규(好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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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댓글 0건 조회 3,003회 작성일 11-05-13 10:17본문
공은 성품이 효우(孝友)하여 가정화목과 효행을 근본 덕목(德目)으로 삼아 비록 가세는 넉넉지 못하였으나 양친을 정성으로 봉양하셨으며 양친께서 별세하시자 전후(前後) 상(喪)을 모두 三년상으로 모셨다. 부친께서 작고하신 후 돌볼 자녀가 없는 팔순(八旬)의 삼종숙(三從叔)을 여러 해 동안 친부모님처럼 모셨으며, 먼저 세상을 뜬 동생 주규(柱圭)공의 자녀들을 거두어 주고 전답을 마련하여 생계대책을 세워 주는 등 어려운 친척들을 힘 닿는대로 도와 공의 집에는 원근 일가들이 상시 찾아들었으나 언제나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공께서는 사업수완도 뛰어나 일제(日帝)가 패망하고 광복을 맞이하자 왜인들이 경영하던 당시의 전매사업인 염전을 미군정청(美軍政廳)으로부터 불하(拂下)받아 군납업을 하게 됨에 따라 가세(家勢)를 회복하고 적지 않은 재력을 모으게되었으나 언제나 근검(勤儉)을 실천하면서 주위의 어려움을 돕는데 더욱 힘을 기울였다. 장복산 일선사(一仙寺)가 퇴락하여 주지스님이 도움을 청하자 요사(寮舍)채를 신축하고 범당(法堂)을 중수하는 등 재정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또한 해방직후 신설학교인 병산(屛山)국민학교의 후원회장을 맡아 여러 가지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공은 원인모를 득병으로 六十세에 별세하였으며, 진해시 천자봉 해좌(亥坐)에 안장(安葬)되셨다. 배위(配位)인 달성서씨(達成徐氏)도 동원(同原) 을좌(乙坐)에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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