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열편 효열부(孝烈婦) 인동장씨(仁同張氏) - 炯澤공 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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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댓글 0건 조회 3,215회 작성일 11-05-12 13:43본문
장씨(張氏)의 본관은 인동(仁同)이니 관종공(寬鍾公)의 따님으로 一八八一년에 태어나셨다. 씨(氏)는 출가하기 전 친가에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조석으로 부모의 안부를 물어서 살폈고 뜻을 어김이 없더니 十四세에 겁암공(怯岩公) 휘(諱) 영년(永年)의 十二세손 인권공(仁權公)의 아드님 형택공(炯澤公)과 혼인하신 뒤 시부모님께 효성을 다하시면서 부군의 뜻을 받들어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부군은 三十五세 때 원인 모를 병이 들어 와병(臥病) 중 정성을 다하여 백방으로 간호하시면서 단을 쌓고 하느님께 부군 병환의 쾌유를 빌었다. 그러나 부군은 회복하지 못하시고 마침내 세상을 떠나시니 부인은 하늘이 무너진 듯 애통하시면서 따라 죽기로 결심, 七일 동안 피를 토하고 十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시다시피 하였으나 슬하에 어린 두 아들이 있음을 깨닫고 내가 만약 죽으면 어린 두 자식을 누가 장차 보육하겠는가, 망부의 외로운 자식을 보육하지 않는 것은 열(烈)이 아니다. 비록 망부의 부탁은 없었으나 이는 망부의 마음이라 하고 이에 고통과 슬픔을 참고 가사를 맡아 보시면서 두 아들을 교육시켜 성취함에 선영(先塋)을 맡기고 문호(門戶)를 번성하게 하시고 十九六五년 八十五세를 일기로 별세하시니 해리면 칠성동(海里面 七星洞) 솔대등 갑좌(甲坐)에 안장되셨다. 고창군 해리면 고성리 칠성동(高敞郡 海里面 古星里 七星洞) 마을 앞에 열녀비(烈女碑)가 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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