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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열편 효열부(孝烈婦) 강릉김씨(江陵金氏) - 炯仁공 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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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댓글 0건 조회 2,731회 작성일 11-05-12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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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열부 강릉김씨(江陵金氏) 정문

소재지 : 강원도 인제군 상남면 미산리


부인(夫人)은 김연조(金演祚)의 따님으로, 一八四五년에 출생(出生)하셨다. 천성(天性)이 정숙(貞淑)한 규수(閨秀)로서 충의공(忠毅公) 휘(諱) 문기(文起)의 十八세손이신 형인공(炯仁公)에게 출가(出嫁)하셨다. 부군(夫君)이 우연(偶然)히 난치병(難治病)을 얻어 신음(呻吟)하시자 부인(夫人)은 백방(百方)으로 치료(治療)하시면서 하늘에 병환(病患)의 쾌유(快癒)를 빌었으나 보람 없이 마침내 부군(夫君)은 세상(世上)을 떠나고 말았다. 부인(夫人)은 따라 죽고자 결심(決心)하였으나 위로 연로(年老)하신 시부모(媤父母)가 생존(生存)하셨고, 아래로는 어린 자식(子息)을 의탁(依託)할 곳이 없었다. 따라서 시어머님의 간절(懇切)한 만류(挽留)로 장례(葬禮)를 치른 후 피눈물을 흘리며 三년 상을 마치셨다. 부인(夫人)은 연약(軟弱)한 여자(女子)의 몸으로 내외가사(內外家事)를 도맡아 보시면서 자신(自身)은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延命)하시고 품을 팔아 산 쌀로 시부모(媤父母)를 극진봉양(極盡奉養)하셨다. 어린 아들을 옳은 길로 지도(指導)하시면서 항상(恒常) 말씀하시기를 「시어머님이 돌아가신 날에 나도 따라 죽겠다.」하시더니, 시어머님이 돌아가시자 치상장제(治喪葬祭)하는 절차(節次)와 가내범사(家內凡事)를 빠짐없이 부탁(付託)하시고 성복(成服)하는 날에 관(棺)을 붙들고 돌아가셨으니, 향년 五十一세이시다. 고종(高宗) 때 정문을 세우라는 정려(旌閭)의 왕명(王命)이 내리어 비각(碑閣)을 건립(建立)하고 현재(現在)까지 보존(保存)해 왔다. 인제군(麟蹄郡)에서 지방문화유적(地方文化遺蹟)으로 지정(指定)하고 보수비(補修費) 一五○만원을 지원(支援)해 주어 자체비(自體費) 二○○만원을 투입(投入), 一九八六년 중수(重修) 단청(丹靑)하여 현존(現存)하고 있는 비각(碑閣)으로서 매년(每年) 추석절(秋夕節)에 제향(祭享)을 드리고 있다.

부인(夫人)의 유해(遺骸)는 강원도 인제군 상남면 미산리(江原道 麟蹄郡 上南面 美山里) 뒷산에 안장(安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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